탄핵 1년 후 대한민국

이건 그냥 상상이다. 현실에선 결코 일어나지 않을일이다.

2018년 3월 9일. 아침부터 시장은 떡상하고 있었다. 주가(KOSPI)는 2500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원화 값은 달러당 1100도 안 했다. 사람들은 개잡주를 사 재고, 생필품 사재기는 커녕 파주에 남은 부동산 매물이 있는지 알아보러 차를 몰고 달려갔다. ‘트럼프 방북설, 5월 북미 대화.’ 비핵화의 공포가 이날 야당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홍준표 대표는 급히 박지원 대표를 찾았다. 얘는 내놓은 빨갱이 새끼지만 홍준표 주변엔 대통령을 그래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청와대에 연락하자니 마찬가지, 이거 실화냐고 묻자니 자기가 비서실장한테 미투갖고 개드립 치다 뼈맞은 일이 걸릴 터였다.

“미국이 북한을 방문하기 전에 반드시 사고가 나겠지요?” 박지원은 딱 잘랐다. “한 달 전은 커녕 너
대선 나간다고 설칠 때부터 이런 말이 돌았습니다. 트럼프는 어떤 식으로든 성과를 남긴다. ‘문재인이 되면 비핵화, 안철수가 되면 코리아 패싱, 홍준표가 되면 폴아웃 코리아’ 라고.”

에둘러 말했지만, 홍준표가 그 말뜻을 못 알아들을 리 없다. 전술핵 재배치 건으로 미국 갔더니 왓더 옥토퍼스 헤드? 라고 놀림받은 게 떠올랐다. 그나마 보다 못한 맥마스터가 머리 까진 걸로 놀리는 거 아니라고 말리긴 했다. 그러나 이번엔 그냥 패싱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다 나 때문이란 말이지, 애국보수라서.” 간신히 24%의 득표로 당이 망하는 건 막았다. 안찰스 그 초딩새끼가 아니었다면 지금 파란 집에서 웃고 있을 사람은 그였을지 모른다. 문재앙에겐 찰스가 일등공신인 셈이다. 갤럽 발표가 나왔다. 대통령 지지율은 71%였다.

애초 며칠 전 방북특사 갈 때 김성태가 미친 소리 하는 걸 냅둔 탓이었다. 거간꾼이니 이런 말들이 유권자들을 자극했을 수 있다. “나는 세련되게 하고 싶었는데, 참모들이 우기는 통에…. 휴~. 나는 왜 그들의 말을 거절하지 못할까.” 혼잣말을 되뇌며 홍준표는 절로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다고 정말 북미 수교라도? 가능성은 0.00001%지만 완전히 무시할 순 없었다.

비핵화 원칙만 합의되어도 이미 호흡기 떼기 직전인 지방선거는 멸망인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홍준표는 즉시 일베 정게에 접속했다. 정게할배는 단호했다. ‘탄핵무효, 국회해산, 헌재해산이 답이다’. ‘정규재도 판포는 안되겠다고 고백하더라’ 아니 이런 XX..

윤서인도 상황 파악 못하기는 비슷했다. ‘대망의 한반도 적화통일 완료까지 60% 정도 진행됐네요. 재작년 한창 미 대선 때 부터 예측했던 시나리오 그대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홍준표는 한숨을 쉬고 인터넷을 껐다. 보수는 절체절명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자유민주당 한국지부는 어쩔 줄 모르고 그저 분노를 터뜨릴 뿐이었다. 누군지도 모를 상대를 향해.

다시 말하지만 이건 그저 상상이다. 하필 왜 홍준표냐고? 그가 제일 아베 정권과 맞는 리더라서다. 연내 북미수교 얘기가 나올 정도로 위급하다. 홍준표도 위급함을 안다. 김영철 방문으로 보수 진영 결집을 시도했다. 하지만 코인에 남북 단일팀으로 65%까지 내려봤던 대통령 지지율은 다시 70%로 돌아왔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면 한가한 대책일 뿐이다. 안철수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 지지율이 미투 운동으로 빠졌으니 기회가 있다는 소리나 한다. 하는 짓이 초딩이라 성추문을 상상할 수가 없을 뿐인 사람이 자기가 잘난 줄 아는 것이다. 하필 절체절명의 위기에 홍준표와 윾승민과 안찰스, 역대급 삼인삼색 세 사람이 보수 대표로 있는 꼴이다.

남은 석 달, 이들이 어떤 해법을 내놓느냐에 따라 보수의 운명이 갈릴 것이다. 두루뭉실한 말 뒤에 숨어선 안 된다. 아예 세 사람이 끝장 토론을 벌여보라. 그래서 뭐든간에 국가적 담론으로 끌어올려 보라. 그걸 보고 국민이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한 달 후, 석 달 후, 일 년 후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며 그때 내가 뽑을 그가 어떻게 행동할지 국민은 묻고 알아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야말로 정말 자민당 정권의 존망이 달린 것일 수 있다.

이등정재 산케이신문 조선지부 칼럼니스트

어린 사장

"저..... 창업 아이템 하나만 찍어 줘요!"


"뭐!"


"아이템 하나만 찍어 줘....."


나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벌떡 일어섰다. 나는 열심히 눈을 비비고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아주 신기한 꼬마 사장이 엄숙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 그의 리플이 있다. 이 사진은 내가 훗날 그를 위해 골라준 아이템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다. 그러나 내 퀀텀이 그만큼 올라타려면 아직 멀었다.


그렇다고 내 잘못이 아니다. 내 나이 여섯 살 적부터 나는 어른들 때문에 기가 죽어 존버라고 하는 전략에서 멀어졌고, 정기적금과 주택청약저축 외에는 한 번도 재테크를 해 본 적이 없지 않은가.


아무튼 나는 놀란 눈을 휘둥그래 뜨고 홀연히 나타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힙하다는 연남동에서 수십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이 아닌가.


그런데 나의 꼬마 사장은 백종원 푸드트럭도 안봤고, 상권 분석에 시달려 녹초가 된 것 같지도 않았으며, 임대료에 겁에 질려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유동인구 많은 곳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공단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청년 사장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나는 마침내 입을 열어 겨우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넌 거기서 뭘 하고 있냐?"


그러나 그 사장은 무슨 중대한 일이나 되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저..... 아이템 하나만 찍어 줘....."


수수께끼 같은 일을 만나 너무 놀라게 되면 누구나 감히 거역하지 못하는 법이다. 돈벌리는 곳에서 수십 킬로 떨어져 어른거리는 상권을 눈앞에 두고, 그것이 말할 수 없이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창업 아이템을 검색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 경영전공인 내가 특별히 공부한 것이라고 해 보아야 원가회계, 소비자행동론, 상법개론 따위임을 생각하고 (기분이 좀 언짢아서), 이 꼬마 사장에게 나는 장사 잘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대답했다.


"괜찮아. 아이템 하나만 찍어 줘."


나는 한 번도 장사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생각나는 있는 단 두 가지 아이템 중에서 하나를 설정해 그에게 알려 주었다. 명란인지 명랑인지 모를 핫도그를. 그런데 놀랍게도 그 꼬마 금수저는 이렇게 답하는 것이었다.


"아냐! 아냐! 난 핫도그가 싫어. 핫도그는 너무 기름지고, 원가 대비 마진이 안 남거든. 술안주나 밥반찬 메뉴를 찍어 줘."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오모가리 김치찌개를 찍어 주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살펴보더니


"아냐! 이건 너무 아재틱한 걸. 좀 젊은 걸로 하나 찍어 줘!"


나는 다시 사진을 보여주었다.


"아냐. x전떡볶이라니 동네에서 애들한테 시달릴 일 있어?"


그래서 나는 다시 파일을 주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먼저 사진처럼 퇴짜를 맞았다.


"아이참..... 이게 아니야. 이건 제ㅇ스 치즈등갈비야. x바 이x끼가 진짜 좋은 말로 하니까 언제적 물건을....."


그때, 무슨 개소리인지 모르겠는 화폐금융론 레포트 쓸 것이 우선 급했던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아무렇게나 쓱쓱 준다는 게 이 사진이었다.



그리고는 던져 주며 말했다.


"이거 요새 핫한 거야. 니 창업 아이템은 그 안에 들어 있어."


그러나 놀랍게도 이 꼬마 심판관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이 아닌가.


"내가 말한 건 바로 이거야! 이거는 바이럴을 좀 태워야겠지?"


"왜?"


"일단 사람들이 줄서면 맛집 소리 들으니까..."


"그거면 충분해. 정말이야. 원래 또 크림 올라가면 인스타빨 쥐기거든."


그는 고개를 숙여 사진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작지도 않은데..... 이것 봐! 미국산 갈비와 생크림이 눈꽃 쌓인 평창같은 조화를 이루고 있어....."


나는 이렇게 해서 한국의 자영업을 알게 되었다.


김재연 아니고 이석기란 말이지

*브런치 백업용

통합진보당 사태가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어쨌든 그 사태는 주역들인 이정희나 이석기, 김재연에 대한 여러 가지의 정보들을 사람들에게 널리 퍼뜨렸다. 개중에는 이석기와 김재연에 대한 부분이 꽤 있었다. 그 둘의 관계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지는 본인들만 알 거라고 본다.

어쨌든 그게 터지고 친한 사람들 여럿이 나를 놀릴 의도로 '이석기와 김재연의 후배' 내지는 그들의 학교라는 식으로 말을 걸어왔다. "어 너네 학교 RO 총본산"라는 말을 들었을 때, 보통 내가 하던 말은 "이석기는 맞는데 김재연은 아니다"였다. 

이런 말을 하게 되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것 자체가 사실이라는 점이었다. 다른 하나는 '그런 놀림 자체가 특별히 기분이 나쁠 건 없지만 별로 길게 가져가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전달한다는 점에 있었다. 그 순간마다 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0년 좀 안 되는 시점, 즉 2000년대 후반에 어째서 나와 우리(동창)들은 구태여 이석기의 모교에 진학했는가? 이 부분은 정말 간단치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문제의 본질은 단순하지만 그걸 인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간단치 않은 문제였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란 2000년대 후반에 문과 계열로 캠퍼스에 입학했던 사람들을 지칭하도록 하겠다. 공대의 경우는 전혀 사정이 다름에 유의를 부탁하겠다)

우리의 수능 점수는 그 이유가 뭐건 별볼일 없었다. 그리고 점수가 낮은 상황에서 갈 수 있는 곳이란 다 거기서 거기고 속칭 아웃풋도 다 거기서 거기인 법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고3이 알 수는 없었다. 그 수준의 대학들에서 어떤 대학과 학과를 결정한 이유는 대략 이런 수준의 것들이었다.

"요즘 중국어가 뜨는데 (같은 점수의) A대 정외 가느니 B대 중어과 가는 게 낫겠지?" 

"S대 출신 교수들이 많아서 (비록 네임밸류는 후달리지만) 이 과는 커리(커리큘럼)가 좋으니 갈 만해"

즉 대략 뭐가 더 취업이 잘 될 거라느니, 누가 어쩌니까 더 취업이 잘 될 거라느니 그런 수준의 이야기였다. 당연히 그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고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저건 이를테면 일반론이었고, 비슷한 성적대의 대학교 중 하나를 고르는 일반적인 논법이었다. 캠퍼스를 간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대략 이런 느낌이었다.

"내가 A대 캠퍼스에 진학한 이유는 A대에만 존재하는 XX학제를 통해 뭔가를 하기 위해서"

"B대 캠퍼스에 진학한 이유는 B대에만 있는 YY학과를 가기 위해서" 

사실 이런 건 믿기 나름이다. 그러나 왜 이렇게 말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분명히 암묵적으로 깔린 게 있었다. '그러니까 이름값이 필요했던 건 아냐' 같은 것이다. 첫째로 (본교의) 이름값 보고 온 것이 아니어야 했고, 둘째로는 이름값을 봤더라도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본 것이어야 했다. 

즉 유독 캠퍼스에 진학한 사람들은 마치 반대급부처럼 실용성을 강조하는 데가 있었다. 건물 뒷구석이라든가, 뭐 그런 곳에서 신입생들은 '온 걸 후회하지 않아'라는 말을 엄마나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되뇌었다. 그건 이를테면 자존심의 문제였다. 우리의 선택은 정당해야만 한다. 우리의 선택엔 그 어떤 '어두운' 욕망도 없다. 그래서 언제나 '학교 이름을 속이는' 사람들은 일종의 환상종 같은 존재였다. 

이는 다르게 말하면 캠퍼스 행을 택한 우리들이 그 자신이 자각하든 그렇지 못하든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강한 불안감을 품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당국에서 학생들에게 보여준 빛나는 선배들의 일화들은 거진 다 우리 선배의 일은 아니었다. 그들이 일궈낸 성과는 1차적으로는 그들 자신의 결과물이었고, 2차적으로는 서울 어딘가에 있는 그 학교의 결과물이었다. 

우리는 그와 같은 문제들에 대한 불안감을 필사적으로 해소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한국에서 학력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꾸준히 축소하려고 했고(ex : 서울대 아니면 거기서 거기다), 반대로 특정한 형태의 대학 교육에 대해서는 그 아웃풋의 가능성을 극단적으로 과대평가하려고 하였다(ex : 상경계에 영어 잘하고 이중전공으로 중어도 탑재하여 짱짱맨 대기업 신입사원이 된다). 당국에게 있어서도 신입생들의 그러한 인식은 오래 유지될수록 좋았다. '공대 빠리지엥'이라는 웃지못할 카피를 걸고 학생들을 데려온 당국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문제였다.

그런 인식은 길면 1년 반, 짧으면 6개월 정도 유지된다. 길어도 1년 반을 넘기지 못하는 이유는 실제 자신이 꿈꾼 학제가 '물리적으로 소화하기 쉽지 않은' 학제라는 점에 있었다. 짧으면 6개월인 이유는 저런 생각이 별 의미가 없음을 강제로 자각하게 만드는 주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1학년은 대체로 그리 생각하였다.

문제는 2학년에서 한 학기를 지난 다음부터 벌어졌다. 현실이 시궁창이었던 것이다. 

1. 흔히 말하는 메이저 언어를 전공한다는 것은 장단점이 있었다. 장점으로는 일단 어지간히 수요가 항상 있다는 것, 단점으로는 반칙에 가깝게 잘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 생각해 보라. 영어는 정말 준 네이티브 급이 많다. 중국어 역시 결코 그런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일본어? 초급 일본어야말로 학점을 받을 길이 없는 막장 상황이 아니던가(자세한 이유는 가보면 안다). 이건 노력의 문제와는 거리가 멀었다. 

2. 수요가 보장되지 않는 특수언어는 노력을 하면 (대략 2학년까지는) 학점을 건사할 수 있었다. 문제는 너무 시류를 탔다는 점이다. 당국과 학과의 입장에선 모든 언어는 엘도라도나 다름없어야 했다. 하지만 애초에 말도 안되는 것이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듯 타국 사람도 영어를 배운다. 비즈니스적인 목적이라면 더욱 더 그러했다. 결국 특수 언어로 타게팅을 해 얻을 수 있는 직업의 대표주자는 리셉셔니스트(쉽게 말해 창구 담당자)였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특수언어까지 잘한다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될 리 없었다. 우린 한국인이다. 

3. 다 집어치우고서라도 그냥 생각했던 비전처럼 되는 선배들이 없었다. 선배들의 잘못이라기보단 상황이 변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청년실업 문제가 대두된 건 대략 10년도 전의 일이지만, 실제로 이 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다루어지기 시작한 건 2010년대의 일이다. 1년이 지날수록 취업의 난이도는 2배로 올라가는 듯 했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는 네임밸류였다. 우리의 네임밸류는 인사팀 앞에서 속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우리가 실제로 대기업 신입공채에서 다 필요없이 스크리닝으로 걸러질 확률은 낮게 잡아도 90%였다.

사실상 우리는 이 상황에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지리적으로 서울에 있었다면 차라리 공기라도 빨리 읽고 대응을 위한 외부적인 솔루션(ex : 학원)이라도 가기 편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닌 상황이었던 바, 각자는 재빨리 각자도생을 위한 대응책을 찾아야 했다. 허장성세에 기초하던 동문으로서의 소속감은 빠르게 붕괴되었고, 그 자리는 '어학연수' '공시준비' 등이 채우기 시작했다. 학교는 그런 사람들을 붙들어 놓을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각자도생이라는 해결책이 딱히 더 나은 결과물이었던 것도 아니다. 우리는 어쨌든 앞서 설명한 종류의 비전을 노리고 실제로 그걸 위해 시간을 썼던 바, 그게 없다면 우리는 그냥 '수도권 대학의 대학생'에 불과했던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상한 꿈을 꾸지 않고 평범하게 대학 다니던 학생보다도 못했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그럴싸한 스펙을 꾸미는 사람들이 있었고 좋은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는 학교의 자랑이라기보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궈낸 것에 가깝게 보였다. 아니면 애초에 우리와 같은 자가 아니었든지. 실제 그들이 매혹시키는 것은 진학 예정자와 대학교 1학년들이었다.

여튼 우리는 한 발 늦게 각종 스펙과 대외활동에 신경쓰기 시작했고, 당초의 비전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학교는 최소한의 시간만 남아있으면 되었고 오히려 거추장스러웠다. 서울공화국인 나라인데 촌구석 캠퍼스에서 뭘 한단 말인가? 

그 와중에 당국은 본교 학생들의 엄청난 반발을 무릅쓰고 억지로 본분교 통합을 실현시켰고, 내 경우 후배가 사라졌다(공식적으로 내가 졸업한 학과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예 다른 학과가 되었으니까). 그러나 우리들은 대부분 그것을 별 문제없이 받아들였다.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갔으며, 꽤 많은 숫자는 거의 입학으로부터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취업을 하지 못하였다. 

우리의 눈이 애초부터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었음을 생각하면 꽤 우울해지는 대목이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 학교엔 취업 설명회라는 것도 '당국이 기업을 억지로 모셔와야' 오는 것이 아니었던가? 우리가 신화라고 생각했던 롤모델 선배들이란 무슨 간지나는 외국계 기업이나 X시 합격자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삼전에 갔다' 같은 것이었다. 

어쨌든 '우리' 중 나는 우여곡절 끝에 운이 좋게 취업을 했고 시간은 미친듯이 지나갔다. 학과 사무실에서는 '취업자 현황'을 구한다며 전화와 문자를 했지만 사실 알 바는 아니었고 신경쓰기도 싫었다. 

그러나 2달 전에 회사에서 이력서를 마주했다. 본교 졸업 예정자처럼 보이는 학생이었고 특별히 두드러지는 스펙은 아니었다. 넘겨보다 학과 란에서 눈을 잠시 멈추었다. 그 지원자의 학과는 본교에 없는 학과였다. 소위 말하는 '본분교 숨기기'였던 것이다. 

P과를 전공하고 회의감에 다니는 둥 마는둥 하다 연락이 끊겨버린 K, 같이 P과에 있다가 1년짜리 어학연수를 끊고 연락이 끊긴 J가 떠올랐다. 학벌 체계에서 그다지 명분이 없던 길을 택했던 우리들의 존재는 항상 불안정한 데가 있었다. 내가 본 이력서는 그것 중 나쁜 축에 속하는 결과물이었고 딱히 동정심을 느끼지는 않았다. 이건 허위 서류에 불과하므로. 단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출신 대학을 묻는 사람에게 1-2초 정도 고민하고 각자가 품은 답변을 하는(또는 했던), 우리들 중 상당수가 품은 불안정한 모습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였다.

'팩트'와 커뮤니케이션

아마도 2016년의 진보진영 전반에게 있어 가장 곤란한 단어는 종북도 경제성장도 무임승차도 아닌 '팩트'일 가능성이 높다. 진보진영의 지식인과 언론사가 누군가를 우호하고 비판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내세운 커뮤니케이션 전략은 언어가 복잡할 뿐 실제로는 꽤 단순한 두 가지 전술의 콤비네이션으로 구성된 것이다.

1) '이미 상대적 약자임이 입증된', 즉 옹호하려는 대상이 겪는 부당함을 최대한 증폭시켜 묘사하면서 동시에 상대적 약자를 둘러싼 구도를 단순화한다.

2) '이미 상대적 강자임이 입증된', 즉 비판하려는 대상에 대해 고도의 형식논리를 구사해 비판한다.

이 두 가지 전술로 구성된 패키지는 대체로 언제나 최소한의 성과는 약속해 주었다. '언제나 불쌍한', '언제나 나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전자의 대표주자가 노동자고 후자의 대표자가 (새누리당) 정부나 경찰, 군대, 기업주 같은 사람들이다. 즉 진보진영의 담론이 밥값을 하는 원리는 대체로 '말을 못 하는 사람들을 대변해' '말을 해주는'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노동자를 대변해 기업과 정부를 고발하는 것이다. 다만 숨겨진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 커뮤니케이션 전략은 항상 정해진 구도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뿐이라는 점이다.

진보진영이 내세우는 거의 대부분의 주장은 이미 약자와 강자가 정해져 있는 상황 하에서 약자를 대변해 효율적으로 강자를 상대하는 데에 적합하다. 다르게 말하면, 옹호하려는 대상이 상대적 약자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면 그 이후의 모든 주장이 쓸모가 없어진다. '귀족노조' 같은 카운터 하나만으로도 진보 언론사와 지식인들이 그간 노동에 대해 쏟아낸 몇백-몇 천개의 이야기를 근본부터 무력화시킬 수 있다.

이런 카운터는 연령이나 계층, 이슈 자체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2030 남성의 기준에서 보면 가장 흔한 것이 바로 '팩트'다. 그게 실제로 사실인지 아닌지와 별개로, 팩트라는 이름을 단 컨텐츠는 그 자체로서 진보진영의 담론을 청소기 빨아들이듯이 제압하고 있다.

이왕 메갈리아가 이슈니, 젠더 화제에서 '팩트'가 하는 역할을 시나리오로 간단하게 그려보겠다.

1) 진보진영(또는 페미니스트 활동가)이 성별 임금격차를 언급하며 메갈리아를 변호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저자가 성별 임금격차를 '남성이 여성의 임금을 강도질한 것처럼' 묘사한다는 점이다.

2)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어떤 남성에 의해 실제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가 발생하는 구조에 관한 '팩트'가 언급된다. 내용인 즉슨 실제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대부분이 여성의 경력단절과 성별별 직군편향에 의해 발생한다는 점이다.

3) 진보진영의 칼럼과 기사를 보고 (이유가 뭐든) 분노한 남성들에게 그 '팩트'가 가뭄의 단비가 된다. 적어도 그들이 여성의 임금을 도둑질한 게 아닐 뿐더러 여성의 임금 중 상당 부분은 여성이 깎아먹은 것이라고 정당화시키기도 편하기 때문이다.

4) 그 결과로 오히려 1과 같은 주장은 '선동과 날조'가 된다.

이런 무력화 사이클은 일반적으로 진보진영이 담론에서 밀리는 경우 대부분 발견할 수 있다. 다만 근래의 메갈리아 사태처럼 극단적으로 밀리는 경우는 또 드문데, 이유를 '남성연대'같은 외부적인 것에서 찾는 것도 충분히 논리적이다(그게 지적으로 매우 불성실하기 때문에 정희진과 같은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는 건 별개로 치고).

그러나 그렇다고 내부적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메갈리아건 젊은 여성이건 전혀 상대적 약자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다. 그에 비해 역으로 젊은 남성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약자라고 여기고 있다. 상대적 약자와 상대적 강자가 완전히 뒤바뀐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똑같이 상대적 약자와 강자에 대한 논법을 구사하게 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실제로 젊은 남성들이 진보 성향 언론사와 진보 지식인의 메갈리아 옹호를 접하고 보이는 반응은 소위 말하는 날선(날조와 선동) 이라 취급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실제로 폭주하는 반응을 보면 잘못된 기사를 읽은 사람의 반응보다는 '인간적인 모멸을 당한' 사람의 반응에 더 가깝다.

(이미 늦었지만) 진보진영이 현 시점에서 고민해 봐야 하는 커뮤니케이션에 관련된 화두는 대략 세 가지 정도가 나온다.

1) 진보진영이 특정한 주장을 했을 때, 실제로 대중이 거의 동 시점에 그 주장에 대한 (최소한 형식논리적으로는 합리적인) 반론을 접한다고 가정해야 한다. 즉 대중이 반드시 디테일한 요소를 반문할 것이라 생각하고 질문이 말이 되건 안 되건 거기에 대한 답안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

2) '상대적 약자론'을 함부로 담론에서 써먹으면 안 된다. 대중으로부터 미리 그렇다고 인정받은 적이 없는 집단을 상대적 약자로 정의하면 대중은 미친듯이 그 사람이 상대적 약자가 아니라는 증거를 찾아낼 수밖에 없다. '형식적인 부분만 보지 말고 실질적인 역학 관계를 보라'고 주장할 바에는 그냥 형식논리를 잘 개발하는 게 낫다.

3) 보편적 통념과 인간성에 호소하는 논리를 최대한 많이 개발해야 한다. 그게 안 된다면 '알 권리' '자유로울 권리' 같은 수준의 일단은 누구나 고개를 젓기 어려운 얘기를 해야 하고, 노조나 페미니스트는 충분히 권익집단으로서의 성격을 가질 수 있지만, 진보진영 자체가 특정 집단의 권익을 다른 집단보다 더 적극적으로 대변한다는 식이면 정말 커뮤니케이션이 꼬인다.
















때늦은 총선 감상

1) 소위 말하는 부동층이 개별적인 후보들이 '친노인지 아닌지'를 고관여층만큼 유심히 살펴보지 않는다는 것은 명확히 보인다. 대선후보나 먹어주는 중진(=잠재적 대선후보)이 아니고서야 친노인지 아닌지는 (상대적으로) 중요한 것 같지 않다는 말이다. 한국에서 정치 얘기 좋아하는 중도-무당파는 그냥 반노를 말한다. 나름대로의 당위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중도니 무당파니 하는 용어를 붙이는 것이다.

2) 주진형의 인터뷰는 대체로 괜찮지만, "안 하겠다고 버티다가 불려나온 김 대표는 거기서 “셀프 공천”이라고 비난을 받는데, 그 모욕감은 엄청났을 거다" 라는 주진형의 주장에 대해서는 너무 김종인 친위무사처럼 구는 게 본인에게 이로운지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김종인의 별명이 '추호'가 된 이유를 친노라는 의원들이나 친노라는 유권자들에게 찾지 말아달라는 말이다. 조직론적인 얘기 잘 꺼냈는데, 조직 수장이면 적어도 자기 조직을 부를 때 이당 저당 하는 태도는 취하면 안 된다. 그 자신을 존경받는 대원로가 아닌 입이 저질에 성질 더럽고 전투력은 애매한 처치곤란 용병으로 만드는 건 그냥 그 자신이지, 애먼 문재인이 양산에서 오더 버튼 눌러서는 아니다.

3) 손혜원이 본인을 정청래 아바타라고 하든 정청래의 제2의 인격이라고 하든 그거야 본인 마음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누구 아바타가 됐든 본인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라는 점이다. 본인 발언이 소위 말하는 '야마'로 어떻게 변하는지를 못 보진 않았을 터인데.. 정치 오래 할 타입은 아니라고 보고 어차피 큰 기대는 없지만, 망치로 누굴 찍는다느니 하는 소리는 자제했으면 한다.

4) 되지도 않을 경선 흥행 나부랭이보다 100배는 더 중요한 것이 애초부터 말이 되는 후보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미 사람들은 더불어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누구인지(=누가 될 지) 알고 있다. 불쏘시개도 좋은 게 필요하다. 좋은 걸 찾아낼 수 없다면 좋게 만들어야 한다. 그게 대선후보가 되었든 대선후보를 위한 불쏘시개가 되었든. 김두관이 2012년에 한 건 그냥 한심한 짓 이상의 것이 못 되었다. '나는 문재인에 반대합니다'가 무슨 대단한 덕목이라도 된다는 건가? 원칙대로 치면 김부겸 정권(혹은 손학규나 박원순 정권)이 문재인 정권보다 나을지를 따지는 게 우선이겠지만, 그거야 '공정한' 상황일 때의 이야기고..

5) 김부겸에게 당권을 한번 줘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내가 원하는 당 대표는 아니지만 한번 그렇게 흘러가 보는 것도 재밌겠다는 뜻이다). 과연 이 사람이 무엇을 붙들고 무엇을 포기할지 보고 싶기 때문이다. 사실 그 부분이 확인이 안 되면 김부겸이 대단한 사람인지 아니면 그냥 운이 좋은 조경태인지도 알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하는, 김부겸이 당권을 쥐었을 때 일어날 흐름은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위해 협치와 협력을 하는 척을 하다 이슈 분별을 못해서 멍청한 짓을 벌이고 친노를 탓하며 당대표를 던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김종인은 더 우격다짐으로 나갔지만 공천 시즌이니 후보들이 데꿀멍멍을 해준 덕이 크지 않았나. 물론 선거가 끝나자마자 손혜원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상황이 되었지만.

6) 우상호 원대야 이종걸 원대에 비하면 뭘 해도 나을테니 평가는 이르다고 본다. 다만 우상호 쯤 되면 이제 본인 이름으로 계파가 나올 법도 한데 여태까지 범친노네 범친문이네 하고 있는 걸 보면 확실히 소위 말하는 86 그룹은 재미있는(동시에 무능한) 데가 있다.

7) 가장 민감한 얘기. 소위 말하는 호남 사람들이 지역당이 내키고 안철수가 좋아서 투표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안 되는가? 왜 꼭 호남이 '좋아서' 지역당을 뽑았다는 결론을 내면 안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지 알 수 없다. 호남의 선택은 위대한 게 아닐 수도 있고, 호남의 선택은 당연히 다른 사람이 믿는 대의에 반하는 의지 그 자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얼마든지 호남은 험지가 될 수 있고, 또 결과만 놓고 따지면 이미 험지다. 난 그들의 결정이 위대하다고도 회초리라고도 여기지 않고, 그들이 특별히 엄청나게 높은(동시에 내가 지지하는 세력에 유리한) 정치의식을 갖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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